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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결혼 3년차에 접어들었다. 수십 번의 발품을 팔아 마음에 꼭 드는 첫 번째 집을 장만한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두 번째 집으로 이사를 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이사 후 우리 부부는 한동안 멍하니 거실을 바라보았다.
“엥? 우리 소파가 원래 이렇게 작았나?”
“에어컨은 어떡하지? 천장에 이미 다 설치돼 있는데.”
“아일랜드 식탁은 여기 동선과 맞지 않네. 에휴!”
넓은 집으로 이사를 오자 모든 가구가 미니어처가 됐다. 신혼집의 평수와 동선에 맞춰 모든 혼수를 마련했으니 새집과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 당연했다. 결국 우리는 소파, 식탁, 협탁 등을 모두 새로 구입했다. 합리적으로 혼수를 장만했다고 생각했는데 결혼 2년 만에 혼수의 반 이상이 쓸모없어진 셈이었다. 게다가 적잖은 대출을 받았는지라 다음 달 청구될 카드 대금과 대출 이자에 대한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성공적으로 혼수 준비를 하고 싶다면 부부가 함께 꾸릴 인생 플랜부터 짜야 한다. 신혼집 평수도 중요하지만, 앞으로의 이사 계획과 자녀 계획을 함께 논의해야 장기적인 안목으로 혼수를 고를 수 있다.
그렇다면 혼수를 장만하기 전에 미리 살펴봐야 하는 것들은 무엇일까? 먼저, 결혼 후 처음 마련한 신혼집에서 얼마나 거주할 것인지 예상해봐야 한다. 자가 소유의 주택이라면 최소 몇 년간 살게 될지 생각해보고, 만약 5년 이상 거주할 계획이라면 현재 집의 평수와 스타일에 맞춰 전체 혼수를 구입해도 문제가 없다. 하지만 전세 계약으로 장만한 집이라면 몇 년 뒤 다시 이사를 해야 하기 때문에 상황이 달라진다. 예를 들어 공간 활용을 위해 붙박이식 가구로 혼수를 준비했다가는 새로 이사한 집의 평수와 맞지 않아 모양이 흉해질 수 있고, 붙박이장 추가와 재설치 비용 등에 많은 돈을 소비해야 할 수도 있다. 더욱이 요즘 아파트들은 에어컨까지 빌트인 돼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미리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등을 전부 마련한다면 새집으로 이사 갈 때 처치 곤란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자녀 계획도 마찬가지다. 당분간 자녀 계획이 없다면 부부의 취미 생활 위주로 혼수를 장만해도 좋다. 하지만 곧 아이를 가질 계획이라면 작은 방 하나는 아이를 위해 비워둬야 하므로 취미 용품들을 잔뜩 마련해두었다가는 나중에 보관할 곳이 없어서 낭패를 볼 수도 있다.
그다음으로는 각각의 가전제품에 대한 기능 점검이다. 더위를 무척 잘 타는 우리 부부는 처음 혼수를 준비할 때 안방, 거실, 작은 방에 모두 에어컨을 설치했다. 아이가 훗날 쓰게 될 공부방에 에어컨이 필요할 테니 미리 사두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게다가 공기청정기를 사지 않는 대신 공기 청정 기능이 우수한 에어컨을 구입하는 걸로 합의했다. 그러나 몇 달 사용해본 결과 에어컨에 딸린 공기 청정 기능은 전력 소비가 일반 공기청정기보다 훨씬 컸고 기능 면에서도 떨어졌다. 결국 전기세를 몇 배로 지불하다 이사 후 별도의 공기청정기를 새로 구입했으니 이 얼마나 낭비란 말인가!
세탁기도 마찬가지다. 당시에는 드럼 세탁기에 대한 인기가 시들해진 상태였다. 이불 빨래가 제대로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고장도 잘 난다는 내용이 방송 보도된 직후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방송 내용만 철석같이 믿고 이불 빨래가 가능한 일반 세탁기 10kg형을 마련했다. 미래에 아기가 태어날 것을 생각해 삶기 기능이 추가된 걸로 말이다. 하지만 이 역시 실패였다. 겨울 이불은 세탁소를 이용하는 게 여러모로 편리했고, 부피가 작은 여름 이불은 7kg짜리 세탁기로도 얼마든지 가능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양말, 속옷처럼 가벼운 빨랫감을 세탁할 때도 육중한 세탁기를 돌려야 하는 부담에 시달렸다. 그뿐인가. 최근 들어 3~4kg짜리 아기 전용 세탁기를 따로 장만하는 추세인지라 출산 후에도 삶기 기능은 거의 쓸 일이 없었다.
결혼 후엔 청소기, 다리미, 믹서기, 생선구이 전용 오븐 같은 실질적인 살림살이에 욕심이 생긴다. 혼수에 욕심을 부리던 그때, 나는 아무리 바빠도 청소만큼은 깨끗이 하겠다며 당시 고가였던 전기 로봇 청소기를 덜컥 구입했다. 진드기 제거부터 먼지 때를 말끔히 제거해준다는 점원의 말에 홀라당 넘어가서 말이다. 그러나 살아보니 청소라는 것은 직접 두 손 두 발을 걷어붙이고 빡빡 밀어댈 때 빛이 난다는 걸 깨달았다. 결국 스팀 청소기를 다시 장만하는 속 터지는 경험을 해야 했다.
그래도 위로가 되는 것은 이 바보 같은 짓을 나만 한다는 게 아니란 거다. 한 친구는 제빵 기술을 배워 아침마다 서방님께 버터 향이 솔솔 풍기는 빵을 대령하겠다는 포부로 외국 브랜드의 값비싼 오븐을 장만했다. 허나 현실은 환상과는 딴판이었으니, 그녀가 빵이나 쿠키를 굽는 날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다. 게다가 빵이나 쿠키 역시 수십만 원을 호가하는 비싼 오븐 대신 10~20만 원의 생선 굽기 전용 미니 오븐 하나로도 충분하다. 아니, 전기밥솥을 이용해도 잘만 구워진다.
마지막으로 생각해봐야 할 것은 가구의 영구성이다. 많은 여자들이 신혼의 단꿈에 젖어 아기자기한 스타일의 가구를 고른다. 심지어 소녀풍의 침실을 꾸미기도 하고 핑크색 소파를 사기도 한다. 결론만 말하자면 이런 선택은 이기적이고 어리석은 짓이다. 소녀풍의 침실과 거실에 만족하는 남편들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남편의 취향과 자신의 기호가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스타일의 가구를 마련하는 게 현명하다.
충분한 예산을 확보하고 있다면 문제없지만, 적은 비용으로 큰 만족을 얻고 싶다면 혼수 물품에 강약을 조절할 필요가 있다. 먼저 여자와 남자가 각자 가장 공을 들이고자 하는 우선순위 아이템을 한두 개씩 정해놓고, 그 물품들을 중심으로 혼수를 준비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각자 포기할 수 없는 아이템을 하나씩 선택한 뒤 그것에 한해서는 아낌없는 투자를 해야 미련이 남지 않는다. 어렸을 때부터 휘장이 둘러진 공주 침대를 꿈꿔온 여자라면 비용이 얼마가 들든 장만하라. 본전을 뽑을 때까지 오래 쓰면 된다. 반대로 남자가 50인치 PDP 벽걸이 TV를 오매불망 원한다면 기꺼이 장만하라. 거실에서 TV를 시청하는 내내 ‘저것 참 잘 샀다’며 행복해할 것이다.
혼수 준비에 정답은 없다. 각자의 상황, 환경, 미래 계획 등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비록 18평 남짓한 전셋집에서 신혼을 시작하더라도, 자랑할 것 하나 없는 혼수를 했더라도 주눅 들 필요는 없다. 지금 당장의 상황에 연연할 것이 아니라 앞으로 점점 발전해나가면 된다. 그것만큼 더 훌륭한 ‘결혼의 목적’이 또 어디 있겠는가! 그러니 지금 당장 포기할 것은 과감히 포기하고 투자가치가 있는 물품에 집중하자. 으리으리한 혼수를 한들 결혼 생활이 순탄치 못해 몇 년 뒤 이혼하게 된다면 그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남들 하는 만큼 하느라 괜히 눈치 볼 것 없이 부부의 삶을 행복하게 할 가치 있는 혼수에 투자하자. 그것이 자동차가 됐든 닌텐도 오락기가 됐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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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속형 혼수가 뜬다
